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아버지가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딸 윤정에게 아버지는 이제 매일 밤 도둑을 걱정하고, 시도 때도 없이 통장과 혈압계를 확인하는 낯선 사람이 되어갑니다. 처음에는 '돌봄'이 사랑의 전부라 믿었습니다. 병원에 모시고 가고, 약을 챙기고, 식사를 돕는 모든 행위가 딸의 의무이자 사랑의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성은 아버지를 향한 통제로 변질되고, 지친 마음은 미움의 싹을 틔웁니다. 아버지의 눈빛에도 존중받지 못하는 인간의 깊은 슬픔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순간에 찾은 성당. 윤정은 고요한 빛 아래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아버지를 기쁜 마음으로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 기도의 끝에서 그녀는 깨닫습니다. 아버지에게 필요했던 것은 완벽한 돌봄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존중이었음을 말입니다. 그날 이후, 윤정은 아버지의 세계를 바로잡으려 애쓰는 대신 그의 세상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합니다. 도둑이 들었다는 아버지의 불안에 맞서지 않고 함께 밤을 지새우고, 그가 잃어버렸다고 믿는 돈을 같이 찾아주며, 혈압계를 시계처럼 차고 다니는 그의 불안을 있는 그대로 안아줍니다. 통제하려는 손길을 거두자 비로소 아버지의 남은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치매라는 질병의 기록을 넘어, 한 인간의 존엄성이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기억은 흐려져도 마음은 선명하게 남는다는 진실을 통해, '돌봄'이라는 의무가 '존중'이라는 관계로 피어나는 감동적인 여정을 그립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곁에 있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DeliAuthor]의대를 졸업했다. 현재 산문작가, 콘다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DeliList]프롤로그: 돌봄과 통제 사이, 무너져 내리는 관계 Chapter 1: 정성이라는 이름의 감옥 Chapter 2: 고요한 성당에서 시작된 질문 Chapter 3: 그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법 Chapter 4: 기억 너머에 남겨진 것들 Chapter 5: 사랑의 새로운 언어, 존엄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