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기억의 저편에 남아 있는 한 장면이 있다. 봄기운이 산천을 감싸던 날, 외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시골의 한적한 산길을 오르셨다. 그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외할머니의 손은 따뜻했고, 걸음은 느리지만 단단했다.
산속으로 향하는 길은 꼬불꼬불 이어졌고, 풀잎 끝에는 이슬이 반짝였다.
외할머니는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들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야, 저 꽃은 바람에도 꺾이지 않지.”
그 말의 의미를 어린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따뜻한 목소리가 지금도 마음속에서 잔잔히 울린다.
그날 우리가 찾은 곳은 깊은 산중의 작은 절, 금정사였다. 외할머니가 다니시던 절인 거 같았다.
나는 그저 외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재잘거렸을 뿐이지만, 그 산길, 그 공기, 그리고 부처님 앞에 두 손 모으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손을 다시 잡을 수 없지만, 그때의 향기와 온기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 다시 그 길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외할머니의 숨결이 깃든, 그 오래된 길을 따라.
수정 드림
나의 유년 시절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지금 인생의 절반을 좌절과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좋은 인연 덕분에 지금은 다행스럽게 귀한 분을 만나 평소 하고 싶었던 책 쓰기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프롤로그
1. 산길 위의 기억
2. 금정사 그리움의 향기
3. 바람이 불어오던 마루
4. 점심 공양의 따뜻한 밥상
5. 산길을 내려오며
6. 외할머니와 나의 하늘
7. 작은 것들의 연대기
8. 다시 그 길 위에서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