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 물결 위로 이른 햇살이 고요히 번진다. 물안개는 아직 자취를 감추지 못하고, 강 건너 버드나무 가지 끝에는 새벽의 이슬이 반짝인다. 강변의 공기가 맑다 못해 서늘하다. 그 위로 한 누각이 고요히 서 있다. 팔작지붕의 곡선이 하늘의 선과 닮았고, 그 아래 마루 끝에는 세월의 먼지가 얇게 내려앉아 있다. 그곳이 바로 **금장대(金藏臺)**이다.
경주시 석장동의 야트막한 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누각은, 신라시대 사찰 금장사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천 년 전 불심과 염원이 깃든 절의 터 위에 세워진 누각은, 지금도 형산강을 굽어보며 묵묵히 시간을 견디고 있다. 강물은 쉼 없이 흐르지만, 금장대의 바람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예로부터 경주에는 ‘삼가팔괴(三佳八怪)’라 하여 세 가지 아름다움과 여덟 가지 기이한 현상을 노래하던 전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금장낙안(金藏落雁). 서천과 북천이 만나는 예기청소 위, 금장대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내려앉았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 전설을 믿고 싶다. 왜냐하면 이곳의 바람과 강물, 그리고 하늘빛은 정말로 한 마리 기러기조차 머물다 가고 싶을 만큼 고요하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누각에 올라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강물의 흐름이 유려하다. 도시의 소음은 멀리 물러나고, 형산강의 물결은 천천히 동해로 향한다.
세월은 흘렀으나, 강물의 길은 변함이 없다. 어쩌면 금장대가 품은 시간은,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경주의 기억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이곳을 찾은 날, 나는 마루에 앉아 바람을 맞았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위로 햇빛이 내려앉고, 물 위의 오리 가족이 유유히 떠다닌다. 그 순간, 문득 오래된 이야기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듯했다.
울화와 예기소의 전설, 붉은 복사꽃처럼 짧게 피었다 사라진 홍도의 삶, 그리고 바위 위에 그림을 새기던 이름 모를 옛사람들의 손길들. 그 모든 이야기가 금장대의 시간 속에 잠들어 있다.
나는 그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더듬어보려 한다. 사라졌지만 남은 것들, 잊혔지만 여전히 빛나는 것들. 그리하여 오늘의 금장대는 단지 한 채의 누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사람과 자연, 기억과 바람이 만나는 자리다.
형산강 위로 저녁 빛이 내릴 때, 금장대의 팔작지붕이 붉게 물든다.
하루가 저물고, 천년의 시간이 다시 흐른다. 나는 오늘, 그 흐름 속에 잠시 멈춰 서서, 바람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수정 드림
나의 유년 시절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지금 인생의 절반을 좌절과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좋은 인연 덕분에 지금은 다행스럽게 귀한 분을 만나 평소 하고 싶었던 책 쓰기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프롤로그
1. 하늘 아래 누각, 금장대
2. 암각화의 손짓
3. 예기청소의 물결
4. 붉은 복사꽃의 이름 홍도
5. 천년의 빛이 깃든 밤
6. 습지의 노래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