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남긴 낡은 편지 봉투, 그 귀퉁이에 희미하게 적힌 주소 하나. ‘名古屋市中村区旧都町000番地’. 먹물 자국이 번진 숫자는 한 세기 전의 시간으로 나를 이끄는 유일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 오래된 문패 같은 주소를 들고 도쿄역에서 신칸센에 몸을 실었습니다. 나고야의 번화한 역사를 등지고 들어선 대문(大門)의 골목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붉은 ‘大門通り’ 표지판을 지나자, 격자창이 달린 낡은 목조 건물들과 기와지붕이 고즈넉한 햇살을 받으며 과거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구 마쓰오카 여관의 빛바랜 흔적을 마주하고,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사탕 공장에 다녔을 어린 소녀, 나의 할머니를 떠올립니다. 이 책은 낯선 도시의 골목을 헤매며 할머니의 어린 시절 발자국을 따라 걷는 손녀의 여정을 담은 기록입니다. 히요시 신사의 고요한 경내에서 할머니의 안녕을 빌고, 나카무라 공원의 저녁노을 아래 말차를 마시며 마음으로 편지를 띄웁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지만, 사랑과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연결하는 길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잊혔던 주소를 찾아 떠난 이 여행은,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것을 넘어, 현재의 나를 위로하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치유의 시간이 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나고야 기행에 동참하여, 저마다의 마음속에 간직한 소중한 기억을 꺼내보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DeliAuthor]의대를 졸업했다. 현재 산문작가, 콘다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DeliList]프롤로그: 시간의 주소 Chapter 1: 후지산을 스쳐, 당신의 도시로 Chapter 2: 대문(大門), 기억의 입구 Chapter 3: 낡은 여관과 티라미수 한 조각 Chapter 4: 신사의 기도, 사라진 공장의 흔적 Chapter 5: 노을 속에서 부치는 편지 에필로그: 별빛 아래, 열여덟의 당신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