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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김장

...
마음에 드셨나요?
[ComplexContentWithDelimiter][DeliAbstract]

김장철이 다가오면, 온 동네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바람은 더 차갑게 느껴지고, 골목마다 배추와 무의 냄새가 스며든다. 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붉은 고춧가루의 냄새가 코끝을 따갑게 스치고, 팔을 걷어붙인 상인들의 목소리가 어느새 귀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모든 풍경을 어머니의 옆모습과 함께 기억한다.

어머니는 김장이라는 일을 단순한 식량 비축이 아니라, 한 해의 온기를 품어두는 의식으로 여겼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김칫소는 완성되었고, 그 속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사랑과 고단함, 희망이 함께 버무려져 있었다.

 

일 년 전 어느 따뜻한 봄날,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벌써 두 번째의 김장철을 맞이한다. 그 이후로 나는 김장철마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낀다. 시장에서 배추를 볼 때, 통에 절여진 배추를 볼 때, 뜨거운 김칫국 한 그릇을 떠올릴 때마다 어머니의 손길이 먼저 떠오른다. 어쩌면 김장은 나에게 어머니의 목소리와 숨결을 다시 만나는 통로였는지도 모른다. 그 통로가 눈앞에서 한순간 사라졌을 때, 나는 한 계절의 일부를 잃은 듯했다.

 

이 책은 그 잃어버린 통로를 좇는 기록이다. 김장이라는 일상적 행위를 축으로, 어머니와 함께 나누었던 시간들을 되짚고자 한다. 따뜻한 솥 불 옆에서 나눴던 작은 대화들, 가족들이 모여 웃고 다투던 장면들, 어머니가 내게 일러주었던 소소한 비법들모두 소중한 단서다. 이 단서들을 따라가면, 단순한 반찬 한 가지가 아니라 한 가정의 역사와 사랑의 방식이 보인다. 어머니의 김장은 우리 가족에게 겨울을 견디게 하는 의식이자, 세대를 잇는 손짓이었다.

 

나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하면서 어쩐지 서늘한 기대감을 느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잃어버린 풍경을 붙잡아 늘이는 일과 닮아있다. 종이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옮기고, 손동작 하나하나를 문장으로 엮어내면, 어쩌면 잊혔던 냄새와 소리와 온기가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동시에 두려움도 있었다. 기억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다. 하루하루를 함께한 사람의 얼굴도 시간 앞에서는 희미해진다. 그런데도 글로 남기는 일은,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를 오래도록 지탱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됐다.

 

김장은 단지 음식이 아니다. 김장은 가족을 돌보는 방식이며, 계절과 세대가 만나는 행사다. 어머니는 김장을 통해 가족의 몸을 채우는 동시에 마음을 다독였다. 배추를 손으로 뜯고 소금을 뿌리며 어머니가 불러주던 옛이야기, 저녁 무렵 나누던 노곤한 농담, 아이들 장난에 피식 웃으시던 얼굴그 모든 것이 김장 속에 녹아 있었다. 어머니의 손맛은 단순한 비율이나 재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에 의해 길들어진 습관과 마음의 온도였다. 그래서 같은 레시피를 따라 해도 늘 어머니의 맛이 되지 않았다.

 

이 책에는 그런 사소한 순간들을 모아놓았다. 모종을 심어 정성껏 가꾼 배추를 큰 통에다 절이고 여름 내내 땀 흘리면서 가꾸신 빨간 고춧가루며 큰 솥에서 끓여진 육수며 이 모든 것이 어머니의 손끝에서 나왔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가능한 한 정직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적어 내려가고 싶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김장은 치열한 일상의 기록이자, 우리 가족의 마음을 이어주는 끈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한 가지를 전하고 싶다. 김장이라는 행위가 특별히 장엄하거나 거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있던 자리에는 늘 사람들의 손길과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는 저녁 반찬을 위해,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또 누군가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김장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손길들을 응시하고, 어머니의 손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통해 또다시 겨울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이제 문을 열 듯 첫 배추를 펼치고, 소금 한 줌을 집어 올리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머니가 내게 남긴 김장의 계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도 어머니의 손길을 닮은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 장면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따뜻한 겨울을 남겨주기를 바란다.

 

수정 드림


[DeliAuthor]

나의 유년 시절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지금 인생의 절반을 좌절과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좋은 인연 덕분에 지금은 다행스럽게 귀한 분을 만나 평소 하고 싶었던 책 쓰기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DeliList]

프롤로그

 

1. 김장의 계절이 오면

2. 온 가족이 모이던 날

3. 어머니와 함께 버무리던 시간

4. 기억 속에서만 버무르는 김장

5. 다시 어머니의 겨울을 생각하며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