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겨울밤, 유난히 길게 느껴지던 동지의 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바람은 문틈을 스며들었고, 집안은 어둑했지만, 부엌만큼은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가마솥 위로 올라오던 김,
붉은 팥이 터져 익어가는 소리, 나무 주걱이 솥을 저을 때 나는 둔탁한 음, 그리고 그 앞에서 조용히 허리를 굽히고 있던 엄마.
동지는 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고 했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 동지는 가장 따뜻한 냄새가 나는 날이었다. 온 집에 퍼지던 팥 향에 마음까지 푹 잠기던 날. 엄마는 팥을 씻고 삶으며 자주 말했다.
“팥은 세 번 물을 만나야 깊은 맛이 난단다.”
어린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했지만, 그 말에는 오래된 경험과 정성이 있었다.
엄마는 이제 하늘에서 별이 되어 나를 본다.
하지만 동지가 오면, 나는 다시 가마솥 앞에 서 있는 엄마를 본다. 그 손이 움직이던 속도, 손등의 굴곡, 김으로 흐릿해진 눈매마저 선명하게 떠오른다. 올해는 동지가 찾아오면 나는 팥죽 한 그릇을 정성껏 끓일 것이다.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내 안에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그러나 그리움이 깊어지는 밤,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엄마와 마주 앉아, 새알을 만들던 작은 아이로.
수정 드림
나의 유년 시절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지금 인생의 절반을 좌절과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좋은 인연 덕분에 지금은 다행스럽게 귀한 분을 만나 평소 하고 싶었던 책 쓰기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프롤로그
1. 가장 따뜻한 겨울날
2. 가마솥 앞의 엄마
3. 팥을 삶는 시간
4. 새알 만들기
5. 가장 깊고 붉은 그릇
6. 가장 긴 밤의 위로
7. 엄마의 마지막 동지
8. 그리움이 익어가는 시간
9. 계절이 알려준 것들
10 동지의 의미, 사랑의 의미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