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마음에 품고만 있던 일이 있었다.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다짐했지만, 그 ‘언젠가’는 늘 멀리 있었다.
삶은 늘 바쁘다는 핑계를 만들어냈고, 나는 그 핑계에 기대어 그 꿈을 뒤로 미루곤 했다.
백두산.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울림을 주는 그곳.
우리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그 산을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그려왔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수없이 만나왔지만 정작 내 발로 그 땅을 밟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곳을 너무 오래 꿈꾸기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가고 싶은 마음보다 ‘언젠가’라는 말이 더 익숙해질 만큼.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오래된 꿈은 아주 뜻밖의 순간에 나를 찾아왔다.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 백두산, 갈래?”
그 한마디는 길고 긴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망설일 이유도, 미룰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백두산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그리고 조금은 어이없을 만큼 빠르게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조롭게 흘러갔다. 일정이 잡히고, 비행기 표가 예매되고, 준비가 끝나기까지 막힘없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가도 되는 걸까.
오랜 시간 바라온 일일수록 조금은 더 어렵고, 조금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작은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애써 밀어내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안고 가기로 했다.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어쩌면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박 3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하지만 그 시간은 단순한 여행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과연, 천지를 만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말한다. 백두산의 천지는 아무 때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허락된 자에게만, 아주 잠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그래서일까.
나는 그곳을 향하기도 전에 이미 시험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그 땅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여행을 준비했다. 그렇게 나는, 오래도록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그 이름을 향해
조용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백두산.
이제는 꿈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마주하게 될 풍경이었다.
수정 드림
여행을 통해 삶을 배우고, 그 순간의 감정을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평범한 일상에서 작은 풍경과 마음의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그 시간을 조용한 글로 기록하고 있다.
오래 마음속에 품어온 백두산을 마주하며, 비록 천지를 눈에 담지는 못했지만, 그곳에서 느낀 바람과 공기, 그리고 마음의 흔적을 이 책에 담았다.
보지 못한 것보다 그곳에 서 있었던 시간이 더 깊이 남는다는 것을 믿으며, 오늘도 삶의 한 장면을 차분히 써 내려가고 있다.
프롤로그
1. 우연처럼 시작된 필연
2. 낯선 땅, 연길
3. 백두산으로 가는 길
4. 백두산, 그러나 열리지 않은 천지
5. 그래도 백두산이었다.
6. 용정의 밤
7. 도문, 경계의 풍경
8. 짧지만 깊은 여행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