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것을 잊고 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이름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오래전 교실 한쪽에서 불리던 이름들. 운동장 끝에서 숨이 차도록 뛰어다니며 서로를 부르던 목소리. 그 이름들은 세월이 아무리 쌓여도 마음 한켠에 그대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느덧 반세기.
각자의 삶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누군가는 도시에서, 누군가는 고향 가까이에서, 또 누군가는 바쁜 일상속에서 하루를 버티듯 살아왔다.
그렇게 흩어져 있던 우리가 어느 날 다시 모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시간은 늘 바쁘고, 마음조차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한 번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026년 4월 12일 아침.
전국에 흩어져 살던 얼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야, 오랜만이다.”
“너 하나도 안 변했다.”
짧은 인사 속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함께 묻어 있었다. 낯설어야 할 얼굴들이 이상하게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모습보다 어린 시절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주름이 늘고 머리가 희어졌어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우리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부석사.
1,300년의 시간을 품은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어쩌면 우리 각자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했고, 누군가는 그저 함께라서 좋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같이 간다는 사실이었다.
따스한 봄날이었다. 햇살은 부드럽게 내려앉고, 공기는 맑고 가벼웠다.
그날의 우리는 나이를 잠시 내려놓고 있었다. 다시 이름을 부르고, 다시 웃고, 다시 같은 시간을 걷기 시작했다.
이 글은 그 하루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그날 우리가 잠시 되찾았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다시 만난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정 드림
어릴 적부터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을 마음에 담아두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당연했던 순간들이 점점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기억을 붙잡듯,느낌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글은 화려한 여행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 떨어져 살던 친구들과 함께한 하루 속에서 잠시 되찾았던 ‘그 시절의 마음’을 담은 기록이다.
부석사의 고요함과 무섬마을의 느린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바쁜 삶 속에서 잠시 멈춰 서고 싶을 때, 잊고 지냈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을 때 조용히 꺼내 읽을 수 있는 작은 쉼표 같은 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도 크지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진심을 담아 천천히 써 내려가고 싶다.
프롤로그
1. 아화역 시작의 아침
2. 길 위에서 다시 만난 시간
3. 부석사로 가는 길
4. 계단과 문을 지나며
5. 안양루에서 바라본 세상
6. 무량수전 시간의 중심에서
7. 내려오는 길 그리고 따뜻한 한끼
8. 무섬마을 신간이 머무는 곳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