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시간을 걷는 일
어떤 시간은 지나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기록으로 남기도 하고, 이야기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어떤 시간은 그보다 더 조용한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머문다. 나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그 시간을 처음 만났다.
왕과 사는 남자.
그 속에는 왕이었으나 왕으로 살지 못한 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쉽게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조용함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 시간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그리고 결국, 그가 머물렀던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청령포.
강으로 둘러싸이고, 절벽에 막혀 세상과 단절된 땅. 그곳에서 나는 멈춰 있는 시간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그의 마지막 자리로 향했다.
장릉.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흐르기 시작한 시간을 보았다.
이 책은 그 두 시간 사이를 걸으며
느끼고, 생각하고, 머물렀던 기록이다.
그러나 단순한 여행의 기록은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며 그 안에 담긴 시간을 마주하고, 그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게 된 여정이다.
역사는 종종 짧은 문장으로 사람을 남긴다. 그러나 그 문장 사이에는 수많은 하루와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조용히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숨결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길을 걸었다.
이 책을 펼치는 당신도 어쩌면 누군가의 시간을 따라 걷게 될지도 모른다.
그 길 끝에서 자신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조용한 만남을 이 책의 시작에 남겨두고자 한다.
이제, 한 사람의 시간을 걷는 이야기가 천천히 시작된다.
일상의 길 위에서 시간을 마주한다.
경주를 걸으며 천년의 시간을 사색하면서 역사 속 인물과 공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살아 있는 시간’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 사람의 마음과 시간이 어떻게 머무는지를 느끼고,
그 감정을 담담하고 서정적인 글로 풀어내고 있다.
프롤로그
1. 떠나기 전 이미 시작된 길
2. 길 위에서 상상으로 먼저 도착하다
3. 강으로 둘러싸인 섬 청렴포
4. 나룻배위의 시간 건너는 마음
5. 어린 왕의 자리 남겨진 숨결
6. 망향의 자리 닿지 못하는 마음
7. 역사 속 단종 왕의 이름으로 남다
8. 이야기와 진실 사이 그사이에 남은 마음
9. 떠나는 길 남겨진 시간 앞에서
10. 돌아온 자리 늦게 피어난 이름
11. 만약이라는 이름 앞에서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