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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송을 수놓던 밤. 태평송을수놓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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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송을 수놓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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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은 왜 희미해졌을까.

어떤 이름은 천년의 시간을 건너 더욱 또렷해지고, 어떤 이름은 역사의 그림자 속에서 서서히 희미해진다. 누군가는 찬란한 업적으로 기억되고, 누군가는 시대의 변방에 조용히 밀려난다. 그러나 잊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오래도록 돌아보지 않았을 뿐이다.


신라의 여왕을 떠올리면 많은 이들이 먼저 선덕여왕을 기억한다. 하늘의 별을 읽던 첨성대와 황룡사의 거대한 꿈, 백성을 향한 지혜로운 통치까지. 그녀는 오랜 세월 신라를 대표하는 여왕으로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나라가 크게 흔들리던 시절 왕좌에 올랐던 여왕이 있었다. 신라 제28대 왕, 진덕여왕이다. 그러나 진덕여왕의 이름은 어딘가 조용하다. 역사는 그녀를 짧게 기록했고, 사람들의 기억 또한 오래 머물지 않았다. 어떤 이는 김춘추와 김유신이 이끈 시대 속에서 존재감이 흐릿한 왕이라 말한다. 또 어떤 이는 당나라를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황제에게 바친 굴욕적인 왕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마치 그녀는 스스로 나라를 이끈 군주라기보다 시대에 떠밀린 이름처럼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른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왕위에 올랐던 신라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서쪽 국경은 무너지고 있었고, 백제의 기세는 거셌다. 고구려는 신라를 외면했고, 내부에서는 왕권을 뒤흔드는 반란이 일어났다.


나라의 숨통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마치 거센 바람 앞에 놓인 작은 등불처럼, 신라는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시절, 왕좌는 화려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과 책임을 견뎌야 하는 외로운 자리였다. 한 나라의 운명이 기울고 있을 때 왕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무너지는 성을 바라보며, 전쟁의 소식을 들으며, 죽어가는 백성의 한숨을 들으며 그녀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들지 못했을까.

 

역사는 때때로 강한 결단보다 눈에 띄는 승리를 기억한다. 하지만 어떤 시대에는 살아남는 것 자체가 가장 치열한 승리이기도 하다.

 

진덕여왕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신라가 홀로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남은 길은 단 하나, 거대한 제국 당나라와 손을 잡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맹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때로 자존심도 내려놓아야 하고, 때로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진덕여왕은 스스로 오언율시 한 편을 지었다.

당나라의 태평성대를 노래한 시, **‘태평송’**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비단 위에 정성껏 수놓아 황제에게 보냈다.

후대의 누군가는 그것을 굴욕이라 말했다. 나라의 체면을 버리고 강대국에 머리를 숙인 행동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신라의 독자적인 연호를 버리고 당나라의 연호를 사용한 일, 의관을 바꾼 일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정말 그뿐이었을까.

 

나는 생각해 본다. 그 밤, 여왕은 어떤 마음으로 비단 위에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겼을까바늘 끝이 천을 뚫고 지나갈 때마다 나라의 운명을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쓰러져간 성과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 불안에 떨었을 백성들의 얼굴이 그녀의 마음속에 떠오르지는 않았을까. 여왕은 어쩌면 자신의 자존심보다 나라의 생존을 먼저 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것을 굴욕이라 읽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잊힌 한 여왕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려는 작은 걸음에서 시작되었다. 화려한 승리의 중심에 있던 왕이 아니라, 가장 위태로운 시대를 견디며 나라를 다음 시간으로 건네준 사람. 삼국통일의 영광 뒤에서 조용히 디딤돌이 되었던 여왕. 그리고 밤하늘 아래 홀로 비단을 펼쳐 놓고 나라의 내일을 바느질했을 한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 보려 한다.

 

천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녀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혹시 진덕여왕은 우리가 너무 오래 오해하고 있었던 왕은 아닐까.

이제, 그 조용한 이름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보려 한다. 태평송을 수놓던 밤, 그 밤의 이야기 속으로.

 

 


[DeliAuthor]

역사와 사람이 머문 시간을 천천히 걸으며, 오래된 풍경 속에 남겨진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있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경주의 왕릉과 고찰, 역사 유적지를 찾아 그곳에 스민 기억과 마음을 서정적인 시선으로 기록한다.

 

화려한 역사보다 그 안에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머문다. 기록 너머에 숨은 외로움과 기다림, 견딤의 시간을 조용히 들여다보며 감성적인 수필 형식의 글을 써가고 있다.


[DeliList]

프롤로그

 

1. 무너지는 나라 앞에서다.

2. 태평송을 수 놓던 밤

3.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4. 통일의 문을 열다.

5. 천년의 시간 앞에서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