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래전부터 계획해 둔 여행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바다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
그 짧은 생각 하나에 망설임 없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행복이다.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누구의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이 스스로 길을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소소한 자유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혼자 떠나는 길은 언제나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을 함께 안겨 준다. 혹시 길을 잘못 들지는 않을까, 목적지를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은 아무에게도 쫓기지 않는 느린 여행에 있다. 천천히 달리다 보면 차창 밖으로 짙은 초록이 스쳐 지나가고, 이름 모를 들꽃과 작은 마을들이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목적지보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 시간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어느새 일상의 무게는 뒤로 멀어진다.
그날 내가 향한 곳은 경주 양남의 바다였다. 오래전 차를 타고 지나가며 잠시 스쳐보았던 주상절리가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신기한 바위 정도로만 여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풍경이 마음속에서 점점 더 선명해졌다. 아마도 바다는 내가 다시 찾아오기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양남의 주상절리는 700만 년이라는 긴 세월을 품고 오늘도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거센 파도와 비바람을 견디며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 온 자연의 시간 앞에서, 인간의 삶은 한순간처럼 짧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기쁨을 만나고, 아픔을 견디며, 다시 길을 떠난다.
어쩌면 여행도 그런 삶의 한 모습일 것이다. 낯선 풍경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서 잊고 지냈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
이번 여행도 그랬다. 주상절리를 보기 위해 떠난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내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파도는 쉼 없이 밀려왔다가 조용히 물러갔고, 바위는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 삶의 시간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경주 양남 주상절리를 소개하는 여행안내서가 아니다. 700만 년의 시간을 품은 바다를 걸으며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마음에 담아 온 작은 이야기들이다.
이 책을 펼치는 동안만큼은 독자 여러분도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함께 걸어 주시기를 바란다.
경주에 머물며 천년의 역사와 자연을 벗 삼아 걷고 기록한다.
화려한 관광지보다 오래된 길과 숲, 바다와 서원, 이름 없는 풍경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으며 마주한 자연과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마음의 울림을 글로 담아내고 있다.
나에게 여행은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잊고 지냈던 자신의 마음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의 글에는 풍경에 대한 묘사만큼이나 삶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조용한 성찰이 담겨 있다.
이번 작품 **『바다가 남긴 시간의 무늬』**에서는 경주 양남 주상절리를 걸으며 만난 700만 년의 시간과 그 앞에서 비로소 들여다보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프롤로그
1. 바다를 향해 달리다
2. 700만 년의 시간을 만나다
3. 파도는 오늘도 노래한다
4. 자연이 내게 가르쳐 준 것
5. 다시 길 위에서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