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먼저 찾아온 숲
그렇게 뜨겁게 쏟아지던 햇살도 어느새 한결 부드러워졌다. 계절은 말없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영원할 것 같던 불볕더위도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찾아왔다. 파란 하늘은 한층 높아졌고, 간간이 흘러가는 하얀 구름은 가을 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어느 날 나는 경주 시가지를 벗어나 안강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흥덕왕릉이었다. 흥덕왕릉을 찾아가는 길에는 들판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오래된 소나무 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차에서 내려 숲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다. 곧게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도 있었지만, 오랜 세월 바람을 견디며 몸을 굽힌 나무가 더 많았다.
숲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나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췄다.
이곳에서는 서둘러 왕릉으로 갈 이유가 없었다. 소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발밑의 부드러운 흙길을 천천히 밟으며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흥덕왕릉은 왕의 무덤을 만나러 가는 길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그리움을 만나러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천 년 전 한 왕은 사랑하는 왕비를 먼저 떠나보냈고, 다시는 다른 여인을 맞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왕비 곁에 묻히기를 바랐다.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솔숲을 걸었다. 천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숲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어쩌면 이 길에는 왕의 그리움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기다림이었다.
걷고 바라보며 글을 쓴다. 계절이 바뀌는 길을 걷고, 오래된 나무와 돌을 바라보며 그곳에 남겨진 이야기를 찾아간다.
경주에 살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천년의 역사를 하나씩 찾아 걷다 보니, 역사 속 사람들의 삶이 조금씩 마음 가까이 다가왔다. 왕릉과 사찰, 서원과 옛길을 걸으며 지나간 시간을 오늘의 마음으로 다시 바라본다.
이번에는 가을의 솔숲을 따라 흥덕왕릉을 찾아갔다. 천년의 시간을 견뎌온 소나무와 돌, 그리고 한 왕의 그리움을 마주하며 그 길에서 느낀 마음을 글로 담았다.
작은 꽃 하나에도 마음을 기울이며 오늘을 조용히 피워낸다.
프롤로그
1. 안강 들판 끝에서 만나는 왕릉.
2. 왕비를 평생 그리워한 왕
3. 천년 왕릉에 남은 돌의 얼굴
4. 왕이 남긴 차 한잔과 바닷길
5. 천년의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