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오랜 이민자 친구가 트럼프 집회에서 붉은 모자를 쓰고 눈물을 흘렸을 때,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난 노인의 낡은 외투에서 같은 종류의 분노와 자부심을 보았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이라고 선을 그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등 뒤에서 우리와 같은 공포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책은 정치적 양극단이 놀랍도록 닮아가는 '말굽 이론'에서 시작하여, 사회의 가장 약한 자리에 있는 이들이 왜 자신보다 더 약한 이들을 밀어내는 선택을 하는지 그 심리적 동인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노년 빈곤층이 진보적 복지 대신 보수적 가치를 택하는 이유, 합법 이민자들이 신규 이민자들에게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심리를 행동경제학의 '꼴찌 탈락의 공포(Last-place Aversion)'라는 틀로 분석합니다. 이것은 '세뇌된 그들'을 계몽하거나 '어리석은 선택'을 비난하는 책이 아닙니다. 대신 시혜적 복지가 주는 모욕감, 가난 속에서도 품격을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 공동체에서 밀려난 외로움이 어떻게 특정 정치 담론과 결합하는지를 내밀하게 들여다봅니다. 상위 1%의 보이지 않는 천장보다 당장 내 밥그릇 옆에 앉은 이방인의 발자국이 더 크게 느껴지는 본능적 공포의 실체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악마화'와 '계몽'이라는 손쉬운 답안지를 내려놓고, 그들의 거친 언어와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 뒤에 숨겨진 존엄을 향한 갈망, 그리고 '내 밑에는 아무도 없다'는 아찔한 공포를 함께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지독한 분열의 시대를 건너갈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언제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DeliAuthor]의대를 졸업했다. 현재 산문작가, 콘다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DeliList]프롤로그: 등 뒤에서 서로를 마주 본 사람들 1장. 정반대로 달렸는데 왜 같은 곳에서 만날까 — 이념의 직선이 원형으로 굽어지는 '말굽 이론'의 실체 2장. 악마를 닮아가는 구원자들 — '절대 선'을 확신하는 순간 정당화되는 독선, 검열, 그리고 폭력 3장. 세상을 망친 보이지 않는 손을 찾아서 — 극우의 '딥스테이트·간첩'과 극좌의 '독점자본·제국주의'라는 쌍둥이 음모론 4장. 복잡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뇌 — 생각의 피로를 지우기 위해 '가장 거친 단순함'을 택하는 사람들 5장. "우리가 세운 나라"라는 마지막 훈장 — 절대빈곤과 전쟁의 기억을 평생의 자존감으로 바꾼 노인들 6장. 동정은 모욕이다, 차라리 분노하겠다 — 시혜적 복지가 주는 낙인을 거부하고 자립의 환상을 택하는 심리 7. 풍요를 흉내 내는 가난의 품격 — 무능한 피해자로 남느니 '강자의 언어'를 입으려는 방어기제 8장. 외로움이 권력에게 투항할 때 — 단톡방과 집회 광장이 제공하는 가장 값싼 소속감 9장. 내 밑에 아무도 없다는 아찔함 — 행동경제학이 포착한 본능, '꼴찌 탈락의 공포(Last-place Aversion)' 10장. 나보다 늦게 온 자들을 향한 벽 — 바닥에 선 이들은 왜 파이를 키우기보다 '문 걸어 잠그기'에 열광할까 11장. 보이지 않는 천장보다 눈앞의 발자국 — 상위 1%의 특권보다 내 밥그릇을 위협하는 옆자리 이방인이 더 두려운 이유 12장. "우리는 피눈물로 줄을 섰다" — 합법 이민자가 불법 월경을 향해 품는 원초적 배신감과 공정성 13장. '착한 이민자'라는 가면극 — 주류 사회의 인정을 얻기 위해 더 잔인해지는 이민 1세대 14장. 우아한 진보에 등을 돌린 거친 손들 — 장바구니 물가와 치안 앞에서 사치처럼 느껴진 PC주의 15장. 지도가 뒤집힌 국경 마을 — 텍사스 남부 히스패닉 카운티들은 왜 수십 년 텃밭을 버렸나 16장. 도덕적 훈계는 누구를 구원했는가 — 상대를 '미개해서 세뇌당한 자'로 규정했던 지식인들의 파산 17장. 밥을 주는 자와 자존을 주는 자 — 왜 그들은 통장의 지원금보다 '너희는 자랑스러운 국민'이라는 말에 움직였을까 18장. 사다리를 걷어찬 발, 그 발은 누구의 것인가 — 비난을 멈추고 거울을 볼 때: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가 에필로그: 깃발이 내려간 뒤, 우리는 어디로 걸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