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0년 5월 20일, 한 사상가가 서소문 밖 형장에서 사약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윤휴(尹鑴). 죄명은 사문난적(斯文亂賊), 성리학의 가르침을 어지럽히고 세상을 어지럽힌 역적이라는 뜻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쓰지 않으면 될 일이지, 어찌 죽이기까지 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이 책은 그의 죽음이 단순한 정치적 숙청을 넘어, 조선이라는 거대한 배가 나아갈 항로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추적하는 지적 탐사선이다. 하나의 진리가 다른 모든 생각을 삼켜버린 시대가 있었다. 17세기 조선, 두 차례의 참혹한 전란은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무너진 문명의 공포 앞에서 조선의 지성계는 두 갈래 길에 섰다. 한쪽에는 우암 송시열이 있었다. 그는 흔들리는 세계를 바로 세울 유일한 닻으로 주자학의 절대적 권위를 내세웠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원칙과 예(禮)를 통해 도덕적 질서의 성채를 쌓고자 했다. 다른 한쪽에는 백호 윤휴가 있었다. 그는 주자라는 안경을 벗고, 공자와 맹자의 육성을 직접 듣고자 했다. 경전의 바다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새로운 해석과 실용적 개혁을 길어 올리려 했다. "천하의 이치를 어찌 주자 혼자만 안단 말인가!" 그의 외침은 닫힌 성채를 향한 균열의 망치질이었다. 이 책은 학문적 견해차가 어떻게 '체제 전복의 반역'으로 낙인찍히고, 예법 논쟁이 왕과 사대부의 권력 투쟁으로 비화하며, 결국 한 천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윤휴의 죽음 이후, 조선 지성계는 유연성을 잃은 채 경직되기 시작했다. 사상의 혈관은 굳어갔고, 비판과 질문은 질식했다. '북벌'이라는 공허한 구호 속에 세계의 변화를 외면했으며, '의리'와 '명분'의 칼날 아래 부국강병의 기회는 스러져갔다. 이 지적 동맥경화는 300년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결국 서세동점의 파도 앞에서 조선을 예견된 침몰로 이끌었다. 『조선 지성사의 동맥경화』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통과 이단의 경계는 누가 긋는가?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어떤 운명을 맞는가? 오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송시열'의 원칙과 억압당하는 '윤휴'의 질문은 무엇인지 날카롭게 되묻는다. 윤휴가 사약과 함께 삼켜버린 수많은 질문을 되살려, 닫힌 시대를 넘어 열린 지성의 길을 모색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성찰의 기록이다.
[DeliAuthor]의대를 졸업했다. 현재 산문작가, 콘다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DeliList]프롤로그 | 서소문 밖, 사약 한 사발이 삼켜버린 질문들 제1부 무너진 세계와 두 개의 길 1장. 전란의 잿더미 위에 선 17세기 조선 2장. 원칙의 성채를 쌓은 송시열 3장. 경전의 바다로 뛰어든 자유인 윤휴 제2부 충돌: 텍스트의 해석에서 권력의 투쟁으로 4장. 우정의 파탄과 '사문난적(斯文亂賊)'의 낙인 5장. 옷소매 길이에 숨겨진 칼날, 예송(禮訟) 6장. 붓을 든 정치가 윤휴의 파격적인 개혁안 제3부 파국: 사약(賜藥)과 침묵의 시대 7장. 경신환국(庚申換局)의 피바람과 숙청의 메커니즘 8장. 박세당의 눈물과 닫혀버린 문 제4부 300년의 그림자: 굳어버린 혈관이 멈춘 조선 9장. 북벌(北伐)이라는 허상과 닫힌 국경 10장. 도덕주의의 과잉과 실용의 실종 11장. 구한말의 파국: 예견된 침몰 에필로그 | 오늘 우리 안의 '송시열'과 '윤휴'를 묻다 부록 주요 연표: 17세기 조선 사상사 및 환국 연표 한눈에 보는 인물 관계도: 송시열, 윤휴, 허목, 송준길, 숙종 참고문헌 및 주요 사료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