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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육사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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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의 동생이자 문학평론가인 이원조에 의해 1946년에 출간한 이육사의 유고시집


이원조는 발문에서 육사의 요절을 비탄하고, 천년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노래를 목놓아 부르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육사 생전의 친우들과 함께 산고(散稿)를 모아 엮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그가 광활한 중국 대륙을 내왕하면서 익혀진 공간 의식과, 자신의 내부에 깔고 있는 수사법(修辭法), 독립투사로서 일제에 대한 부단한 저항정신이 점화되어 발생한 분노와, 그의 강한 의지력의 표상에서 온 것이다. 요컨대, 육사로서는 민족 수난에 대한 울분과 그것을 극복한 민족의 미래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고 있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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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iAuthor]

이육사 (李陸史)

 

일제강점기 문학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4518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에 형 이원기(李源琪), 아우 이원유(李源裕)와 함께 대구에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1927년에는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이밖에도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대구 격문사건(檄文事件) 등에 연루되어 모두 17차에 걸쳐서 옥고를 치렀다.

 

중국을 자주 내왕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3년 가을 잠시 서울에 왔을 때 일본 관헌에게 붙잡혀, 베이징으로 송치되어 1944116일 베이징 감옥에서 작고하였다.

 

그의 시작세계는 크게 절정에서 보인 저항적 주제와 청포도등에 나타난 실향 의식(失鄕意識)과 비애, 그리고 광야에서 보인 초인 의지(超人意志)와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의 생애는 부단한 옥고와 빈궁으로 엮어진 행정(行程)으로, 오직 조국의 독립과 광복만을 염원하고 지절(志節)로써 일관된 구국투쟁은 민족사에 큰 공적으로 남을 것이다.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없는 내 골ㅅ방과 같은 육사의 의식 공간은 항시 쫓기고 있는 불안한 마음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빼앗긴 조국에 대한 망국민의 비애와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을 그의 시에 새겨놓은 것이다.

 

1968년 시비가 안동에 건립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Deli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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