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돌아가시기 4~5년 전 요양원에 가게 되기 전까지 거의 약 25년 이상 함께 살았던 할머니. 그래서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많다. 어릴 때 학교에서 가족을 그려보라고 하면 항상 5인 가족을 그렸었다. 엄마, 아빠, 나, 동생, 그리고 할머니였다.
할머니 장례식장에 오셨던 분들은 나를 보며 생전에 할머니가 나를 많이 아끼셨다는 말을 꼭 덧붙이셨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할머니는 예전에 내가 많이 아팠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참 많이 했었다고 한다. 할머니와 같은 교회를 다니셨던 분들도 원래 나를 아셨던 분도, 장례식장에서 처음 본 분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었다고 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 주셨다. 지금 돌아가신 분이 과거 아팠던 나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이야기가, 장례식이 끝나고 열흘 정도가 지난 지금에서 다시 곱씹어볼수록 어딘가 가슴이 찡해지는 것 같다.
남은 가족 중에는 나를 포함해서 기독교를 믿는 분들이 아마도 거의 없지만, 할머니가 크리스천이었기에 장례식의 많은 부분에서 기독교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목사님과 장로님, 교인 분들이 오셔서 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마지막 고인을 보내는 순간의 슬픔을 함께 해주셨다. 종교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무거운 순간에서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것 같았다.
장례 절차와 화장, 납골당에 봉안하는 과정까지 모두 교회의 도움이 있었던 덕분에 할머니가 외롭지 않게 축복을 받으며 떠날 수 있었다. 세상에 알려진 유명인이나 연예인, 존경받는 학자나 위인은 아닐지라도 평범한 일반인이라도 종교 안에서는 존중받는 특별한 존재로 떠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할머니를 위해서도,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도 분명 큰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유명인이 생을 마감하면 많은 이들이 추모하고, 시간이 지나서도 그를 추억해 준다. 그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하고 평전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할머니를 위해서 누군가 할머니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할머니를 추억하거나 할머니에 대한 글을 써줄 사람이 있을까? 물론 가족들은 때마다 한 번씩은 할머니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글로 남겨줄 사람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결심을 하고 보니 내가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 정말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까운 가족이어서 오히려 더 몰랐던 것 같다. 한 인간으로서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여성이었는지, 어떤 친구들을 사귀었는지, 딸로서 혹은 며느리로서의 할머니는 어땠을지, 삶의 가치관은 무엇이었을지, 젊은 시절 좋아했던 책, 가수, 영화는 무엇이었을지, 무엇을 싫어했을지,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의류 사업을 했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옷을 어떻게 디자인해서 만들었을지, 왜 사업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책을 쓴다면 무엇을 적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경험한 선에서, 내가 아는 한에서 할머니에 대한 짧은 글을 써보기로 하였다. 마지막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순간과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대로.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이 들지만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손이 잘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렇게라도 이렇게 짧은 전자책을 완성해 보기로 했다.
故 이순예 권사
生: 1938. 09. 02.
死: 2023. 11. 30.
최성호
무자본으로 어떤 사업도 할 수 있다고 믿고 도전하는 해적 창업가입니다. 지방의 한 의과대학을 다니던 중 캡틴후크를 만나 무자본 창업을 깨닫고 해적이 되었습니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대학을 자퇴하고 2017년, 새로운 개념의 대학교 큐니버시티(주)를 공동설립했습니다.
2021년 1인 기업을 위한 공간과 사람, 서비스를 제공하는 놀면뭐해(주)를 공동설립했고, 2023년 세계 최대 콘텐츠 플랫폼 콘다(주)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자 연락처: choi@condaa.com
저자 소개
들어가는 말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첫째 날, 빈소
둘째 날, 입관
셋째 날, 발인
셋째 날, 빈소에서 화장장과 납골당으로
에필로그
할머니 사진들